기사제목 “탈북민 1호 정성산 영화감독 인천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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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1호 정성산 영화감독 인천을 품다”

“요덕스토리”의 정성산 감독 인천에서 평양냉면 사장 되다.
기사입력 2018.03.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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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요덕스토리’를 2012년 9월 경북 경주에서 제78차 국제 PEN대회에서 보았다.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해외 및 국내 약 700여 명이 참석한 매우 큰 대회에서 ‘요덕스토리’가 개막작으로 초청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연을 관람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끌레지오(프랑스, ‘08년 수상)와 국제PEN본부는 차기 노벨문학상 작품은 정성산감독 같은 탈북민 작가들에게서 나올 확률이 크다는 호평을 남겼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수용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요덕스토리’는 2006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만 약 600여회, 미국월드투어 및 갈라 콘서트 공연 포함 3,000여회 공연으로 200만 명이 넘게 관람했다. 당시 뮤지컬 ‘요덕스토리’는 한국판 레미제라블로 불리을 정도로 평가받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LA타임지, BBC, NHK 등 세계 언론에 주목을 받으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요덕스토리’의 정성산 감독은 탈북 최초 영화감독 이다. 그는 뮤지컬 ‘위대한 쇼’, ‘평양마리아’. 영화 ‘빨간 천사들’, ‘량강도 아이들’ 등 다수의 작품을 만든 문화.예술감독이다.
 
그런, 정성산 감독이 인천에서 평양냉면전문점 사장으로 변신하였다. 아예 서울을 떠나 송도국제도시에 터를 잡았다. 초대를 받고 인천광역시 연수동에 위치한 “평광옥” 으로 가보았다. 그곳에서 만난 정성산 감독은 예전의 카리스마는 온데 간데 없고 음식에 미친 세프가 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아 한참이나 의아해 했다.
  
1969년 평양에서 태어난 정성산은 4남 1녀 중 막내였다. 아버지는 당간부들의 선물용 “벤츠”를 수입하는 노동당 책임간부였고 어머니는 평양시 간부물자(식료품, 의류, 생필품 등) 공급소 부소장이었다. 평양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민들에 대한 생필품 배급을 안내표에 의해 진행 하였으며, 시민들에게 공급되던 식량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나 그의 집은 당간부 부모님 덕분에 그나마 넉넉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정성산감독은 북한의 유일한 영화대학인 “평양연극영화대학” 영화연출학과를 전공했고 당시 구소련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 유학생에 선발되기도 했던 전도유망한 영화학도였다.
 
그러다, 1994년 우연히 남한방송을 듣다가 보위부에 발각돼 사리원수용소에 3개월간 수감되었다. 이후 징역 13년 형을 받고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중 호송차가 구르는 대형사고가 나면서 탈출 하였으며, 또한 평양에서 추방된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양강도까지 갔다가 추격을 받고 중국을 넘어 베트남, 홍콩을 전전하다 드디어, 1995년 대한민국에 입국 하게 되었다. 지금도 북한을 탈출하다 북한국경경비대 총에 맞은 자욱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1996년 KBS 유머 일번지 ‘인민군 동작그만’ KBS드라마 ‘진달래꽃 필때까지’집필, 연극 ‘코리랑’을 시작으로 문예창작 활동을 하게 되었다.
꾸준한 작품 창작으로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등 수많은 작품 제작에 참여 하게된다.
2011년에는 영화 ‘량강도 아이들’로 정식 영화감독으로 데뷔 하였으며, 뮤지컬 ‘요덕스토리’ 의 탄생으로 정성산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정성산감독에게는 “탈북 1호 영화감독”, “탈북 1호 뮤지컬감독” 등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정성산감독이 각색을 한 영화나 직접 연출한 뮤지컬은 거이 1등 안에 들었으며 흥행에 대성공했다. 그런 그가 영화와 뮤지컬을 포기하고 인천으로 온 계기와 평양냉면전문점을 오픈한 내막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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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덕스토리’를 만들게 된 동기는?
 나의 탈북으로 평양의 부모님이 하루아침에 정치범 가족이 되어 양강도의 산간오지로 추방되어 고생을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러던 중 내가 서울에서 여러 반북활동을 하는 것 때문에 공개 처형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그것을 남한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 영화 감독에서 평양냉면전문점 사장으로 변한 계기는?
 인천이 나를 <평광옥>이란 평양냉면전문점을 하게 만들었다. 서울에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자랑하는 평양냉면전문점이 성업중이지만 인천에는 평양냉면전문점이 없다. 현재 북한에 고향을 두신 실향민들께서 가장 많이 생존해 계시는 것 이 인천이다. 그분들에게 북한 평양의 맛을 전하고 싶었고 평양출신인 저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진짜 평양냉면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인생 최고도시 인천에 “올인”하고 싶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실미도”, “쉬리”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최고의 흥행 대박 작품으로 만들었다면 이제 인천 평양냉면전문점 “평광옥”을 시작으로 최고의 흥행작들을 인천에서 만들어 낼 것 이다.
 
■ “내 인생 최고 도시 인천”이란 의미는?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2003년 대한민국 최초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된 것 이 인천이고 현재 지정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절반 정도가 개발된 상황이다.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영종도 등 향후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추가 개발은 “통일국토개발”의 성장 원동력이 인천시가 될 것을 굳게 믿는다. 그래서 내 인생의 최고의 도시이다. 영화, 뮤지컬 할 때는 우물 안에 개구리였다. 인천으로 온 후 2016년 나는 “인천세계부동산엑스포” 총괄수석프로그래머 역할을 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영화감독의 눈에서 도시디렉터의 눈을 가진 계기였을 것이다.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을 통한 글로벌국제도시 인천에서 내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 시작을 평양냉면전문점 “평광옥”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 평양냉면전문점 “평광옥”도 흥행에 자신있나?
“자신있다”라는 표현보다 내 사업 기본 정신인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신념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1970년대 평양에서 해주시던 나의 할머니, 어머니의 평양냉면 맛을 90% 완벽하게 재현하였고 오리지널 평양냉면을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몇 달간 참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을 이겨냈다. 평양냉면은 한마디로 “정성의 극치”가 감미 된 고급음식이다. 평양냉면의 육수를 만들기에 꼬박 이틀이상의 깊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설프게 만들 수 있는 평양냉면 육수가 아니다. 밤새 육수를 내다 가스에 질색해 119에 실려 간 적도 있고 주방에서 넘어져 엉덩이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당시에 넘어지면서 앞니가 부딪혀 너덜너덜 해질 지경까지 미친듯이 정성을 쏟았다. 그러다 평양냉면 30여년의 최고의 백익남 쉐프를 만나 지금의 평양냉면이 완성되었고 이제 손님들에게 “평광옥”의 음식들을 겸손하게 올리고 있다. 내가 평양냉면 최고의 백익남 쉐프를 만난 것이 바로 흥행의 보증수표이고 내가 할 일은 변함없는 맛과 정성으로 손님들을 잘 모시는 일만 남았다.
 
■ 인천에서의 플랜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줄 수 있나?
우선 인천과 중국이 연관된 소재로 “한중합작뮤지컬”을 3년째 추진중이며 제작비만 100억대가 넘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중국측 파트너들이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다. 아마도 제작되면 인천을 상징하는 글로벌 문화콘텐츠가 될 것이며 중국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다. 그리고 올해를 기점으로 “인천송도국제코미디페스티벌”, “인천송도국제코미디영화제” 등 인천을 글로벌 문화관광의 허브로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작품들이 만들어 낼 것 이다. 또한 천만명이상의 관객흥행을 주도한 대한민국의 내노라 하는 영화감독들과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를 능가하는 글로벌 공연들도 준비중이다. 한마디로 문화콘텐츠 작품을 흥행시켜 도시개발에 병행 할 예정이다. 인천은 문화관광 콘탠츠를 흥행 시키면 잿팟이 될 수 있는 도시개발 호재들이 너무 많다. 나는 인천을 문화관광허브 도시로, 대한민국 경제자유구역 본보기 도시로 성장 하는 것이 “통일국토개발”의 뿌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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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지도 어언 23년, 나는 항상 대한민국에 감사하다. 내가 실향민들에게 평양냉면을 올리면서 되새기는 것이 있다면 이제 우리 탈북민들이 진정한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다. 그게 현실이 되려면 무한경쟁사회인 자본주의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 탈북민 3만명시대, 성공한 탈북민들이 새로운 탈북민들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지역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에만 3천여명의 탈북민들이 거주한다고 한다. 평양냉면전문점 “평광옥”은 그런 의미에서 탈북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려한다. 이미 “평광옥” 프랜차이즈 문의도 들어오고 있고 기회가 되면 탈북민들이 사장이 된 “평광옥”을 전국으로 확대 할 예정이다 탈북민 여성분들과 한국남성분들의 결혼을 전재로 가교역할을 하는 “통일오작교” 플랜도 시작했다. 바램이 있다면 나 자신이 “자랑스런 인천인”이 되기 위해 나의 제2의 흥행신화를 인천에서 펼쳐갈 예정이니 많은 분들께서 “탈북민 정성산의 평광옥” 평양냉면을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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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 놀고있네~!!!! 니가 그렇게 싫어하는 세월호단체들에게 팽당한거 엊그제가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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