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역사인물]국가와 재미동포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백일규 (1880-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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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국가와 재미동포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백일규 (1880-1962)

기사입력 2018.01.3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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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jpg▲ 대한인국민회본부앞에서(양주은,정영도,백일규,안창호,1916)
 
500-2.jpg▲ 네브라스카 헤스팅스 소년병학교의 군사훈련 광경
 
백일규는 평안남도 증산군 성도면 오화리에서 부친 백린과 모친 송 씨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5년 미주 유학을 결심, 진남포를 출발하여 일본 고베를 거쳐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이후 미주 본토인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문양목의 후임으로 대동보국회 중앙회장 겸 대동공보의 주필에 선임되어 일본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는데 앞장섰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고 무단통치가 자행되자 미주 사회에서도 상무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912년 백일규는 네브라스카에 한인소년병학교 간부로 군인양성을 위해 힘썼고 1919년에는 고국에서의 3·1운동이 미주 한인 사회에도 전해져 이를 계기로 한인사회의 재정모금활동을 비롯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재정적 지원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백일규는 독립운동 지도를 위해 상해로 떠난 안창호 선생을 대신하여 미국, 하와이, 멕시코 지역 독립운동의 사령탑을 맡았으며 1919년 3월부터 신한민조에 한국경제사를 연재하여 그 이듬해 책으로 발간하였다. 이는 국내외 최초의 한국경제사 서적으로 국가독립을 목표로 한 출간이었다. 해방 후 백일규는 하와이 국민회 기관지 국민보의 주필로 활동하는 등 재미동포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1962년 5월 31일 향년 83세로 별세하였다. 정부는 백일규의 공훈을 기려 199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500-3.jpg▲ 헤스팅스 소년병 학교의 학생들
 
500-4.jpg▲ 백일규가 집필한 한국경제사
 
사진·자료제공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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