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北주민, 3대 수령들의 신년사는 ‘인민생활 향상’ 거짓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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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주민, 3대 수령들의 신년사는 ‘인민생활 향상’ 거짓말 역사”

신년사에 관심 지속 떨어져…소식통 “‘수령도 인간’ 인식 확산”
기사입력 2018.01.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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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김정은은 신년사(1월1일)에서 ‘인민생활향상에서의 전환’을 언급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경공업·농업·수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인민생활향상에서 보다 큰 전진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민생활 개선은 체제안정을 꾀하는 김정은 체제 출범 6년째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김일성·김정일 시대 신년사에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었다는 점이다. 1946년 ‘전체 인민에게 고함’으로 시작된 첫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민주주의적 시책들을 실시함으로써 인민대중에게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여 주며 인민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도록 명시했다. ‘이밥에 고깃국’을 약속했던 김일성은 이후 49년 육성 신년사를 통해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높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인민경제는 제자리걸음이다.

김일성 사후 1995년 공식 출범한 김정일 체제는 첫 공동사설에서도 ‘당의 혁명적 경제전략을 관철하여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서 군의 역할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후 최악의 기아가 초래됐다. 19년 동안 김정일은 해마다 인민생활향상을 제창했으나 식량난은 지속됐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신년사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떨어진다. “3대 수령들의 신년사는 거짓말 역사”라고 평가하는 주민들도 나온다. 데일리NK는 2018년 김정은 신년사 발표를 맞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신년사·신년공동사설 발표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에 대해 들어봤다.

“머리가 새빨갈 때는 몰랐는데, 수령(김일성)의 구호도 늙어서 힘이 떨어지더군요”

DNKF_18157_334409_1514869003_i.jpg▲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일성
먼저 김일성은 육성으로 1946년~1994년까지 무려 49년 동안 신년사를 진행했다. 초창기엔 주민들 대다수가 김일성 신년사 육성을 귀에 담아 끝까지 앉아 들었다고 한다. 쌀과 월급이라는 배급제 정치로 유발된 충성심이 그나마 남아 있었던 것이다. 현재 삶은 고단해도 언젠가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이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평안남도에서 2016년 탈북한 김옥(가명‧50대) 씨는 “김일성 시대에는 공장 기업소가 특별히 조직하지 않아도 집에서 신년사 시간을 기다렸다”며 “김일성 목소리를 앉아서 경건하게 들으면서 신년사 학습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머리가 새빨개서 못사는 것도 미제(미국) 때문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앙 공급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주민들은 신년사에 대해 회의감을 품기 시작했다. 또한 김일성의 육성을 들으면서 ‘수령님이 이젠 늙어서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다수의 탈북자들은 증언했다.

김일성은 1994년 진행된 마지막 신년사에서 “자립적 경제토대를 반석같이 다지고 사회주의적 요구에 맞게 인민생활을 더욱 원만히 보장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빈말에 그쳤다.


“김정일 자신감 떨어져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인민생활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았죠”

DNKF_18160_334409_1514869003_i.jpg▲ 김정일 시대 노동신문에 게재된 신년공동사설
1994년 김일성 사후 주민들은 김정일의 육성 신년사를 기대했다. 당 제6차대회에서 공식 후계자로 나선 김정일 육성을 들어본 적이 없던 것이다. 1992년 북한군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이 있으라’는 짧은 육성이 전부였다. 김정일의 신년사 육성기대는 일종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 북한경제난에 대처한 개혁정책을 소망하는 바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바로 무너졌다. 1995년 김정일은 공동사설로 대체했다.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에 ‘신년 공동사설’이 게재되면서 주민들은 김정일의 자신감 결핍을 절감했다.

함경북도에서 2015년 탈북한 박미옥(가명‧50대) 씨는 “공동사설이 나오면서 김정일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간부들과 주민들 속에 많이 돌았다”며 “말을 유창하게 못하고 더듬어서 공동사설로 한다는 뒷말이었다”고 소회했다. “장군님 재목이 못 된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평안남도에서 2017년 탈북한 이명희(가명‧50대) 씨도 “(김정일이) 운이 안 좋은 목소리로 평가될 게 두려워 공동사설로 내보낸다는 말을 보위부 간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또한 공동사설은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서 군의 역할을 높이고 모든 군들에서는 자체의 힘으로 군내 인민들의 생활을 높이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려야 한다”고 전했다. 인민생활 책임을 지방에 떠맡긴 것이다.
 
이처럼 책임 떠넘기기, 정치능력 부족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은 공동사설을 형식적으로만 대했다. 체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장마당을 믿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수령을 외면하고 시장을 우선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머리가 총명해 신년사 안보고 읽어’ 교육 역효과, 원수님도 똑같은 사람일 뿐”

DNKF_18161_334409_1514869003_i.jpg▲ 신년사 발표하는 김정은
김정은은 2013년 첫 육성 신년사를 했다. 김정일과는 다른 행보로 할아버지 따라하기 행보의 일환이었다. 당시 김정은의 육성신년사 모습은 앞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연설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실망감이 커져갔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1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원수님의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게 (김일성)수령님과 비슷해서 기대가 컸었다”며 “인민생활이 풀린다는 소문도 나면서 (김정은)희망을 갖고 신년사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별다를 게 없었다. 시장활동 제약은 크지 않았지만 대신 각종 세금징수가 급증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3대 수령들의 신년사는 거짓말의 역사”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또한 김정은은 인민생활 향상 강조도 그대로 답습했다. 첫 신년사에서 “경제 강국 건설은 사회주의 강성 국가 건설의 위업 수행에서 전면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며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특별히 강조했다. 이후 ▲2014년 농업을 주 타격 방향으로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 마련 ▲2015년 자립경제의 토대를 최대로 발동하여 인민생활 개선 ▲2016년 농산·축산·수산부문에서의 혁신 ▲2017년 경공업·농업·수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집착으로 강력한 대북제재를 자처하자 주민들의 신년사에 대한 기대감은 폭락했다. 당국이 가정주부들까지 신년사 시청하도록 강제 조직하고 불참을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신년사를 믿지도 않거니와 관심도 없어 무슨 내용인지 신경도 안 쓴다”며 “인민생활 향상된다는 말은 나팔소리로 인식하며, 간부들도 신년사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선전에 따른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김정은 육성 신년사를 두고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원수님은 머리가 총명하고 천재적이어서 신년사 원문을 보지 않고 읽는다”는 말도 안 되는 교육에 오히려 신격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머리가 좀 돌아가는 아이들에겐 신과 같은 허무한 선전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면서 “현실과 동 떨어진 신년사에 세뇌는 무뎌지고 점점 ‘수령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제공 : 데일리NK(www.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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